2002년 3월 말이었나보다.
당시에 서울 종로에 있던
서울 사무처에 갓 출근하기 시작했던 나는
큰 산들을 양 옆에 낀 고속도로와
구불구불한 오르막길들을 지나고
천을 따라 있는
역시 구불한 2차로를 따라
실상사에 처음 도착했다.
실상사 연꽃연못이
그때는 밭이었다.
그날, 젊은 여성이 그 밭에 감자를 심고 있었다.
오래된 작은절 실상사
천왕문 앞에 감자밭
그리고 우리 일행을 보며 손 흔들어 주던
그 여성의 환한 미소에
봄 햇살이 환하게 가득했다.
아름답고, 충만한 장면이었다.
보슬보슬한 흙과
화장기없이 까맣게 탄 얼굴과
소박하고 편안한 옷 차림의 사람들.
출장으로 실상사에 오는 것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불교귀농학교 현장실습
인드라망 가족 캠프
회의업무 등으로도 오고
귀농전문학교에서 하는
자연의학강좌도 듣고
휴가때도 실상사에 와서
머물며 농장 일도 했었다.

실상사에서 어느날
보광전에서 어느 스님의 절하시는 뒷모습이
참 지극하게 느껴졌었다.
바닥에 참으로 지극하게 몸을 낮추어
납작해 지시는 몸짓이 그렇게 느껴졌다.
나도 절을 할 땐 그렇게 바싹 바닥에
나의 몸을 낮추고 싶어졌다.
20대 후반,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실상사, 도법스님, 귀농운동, 불교를 만나면서
나의 세상은 새롭고 생생해졌다.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해 졌다.
흙을 만지며 산다는 것.
자립적 가치
손을 쓰며 사는 삶
해를 덜 끼치며 살수 있는
대안문화.
같이 기도하고 공부하고
좋은 책을 함께 읽고
좋은 생각을 나누는 공동체.
함께 행동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공동체.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늘 동경하던
실상사작은학교 배움지기로
지원하게 되었다.
청소년들과 함께 산다는 것인지는 잘 몰랐지만
실상사작은학교에서 하는 모든 것이
다 의미 있고, 재미있어 보였다.
그렇게 16년째
실상사작은학교 배움의 공동체에서
청소년들과 배움지기들과 함께 살고 있다.
실상사작은학교는
나의 배움터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을 같이 배우기도 하고
나는 교과를 가르치거나
길잡이로 안내를 하면서
공부를 하기도 한다.
학교 공동체를 같이 가꾸고
함께 살면서 사는 것을 배우기도 한다.
어렸을 때
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건 착한 사람이기도 했고
지혜로운 사람이기도 했던 거 같다.
여전히 꿈꾸는 사람은 착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